군중심리군중심리

그야말로 군중의 시대다. SNS라는 새로운 공간에선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사회 공동의 이슈를 만들어낸다.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공통 관심사에 따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집회나 모임은 이제 우리 사회의 일반화된 현상이다.

 

이처럼 때로는 불특정 다수와 짧은 시간에 의기투합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정확히, 118년 전 발간된 '군중심리'에 따르면 군중은 그야말로 ‘어리석고, 우매하고, 감정적’이기 때문에 쉽게 부화뇌동하는 집단이다. 저자가 군중의 심리와 행동을 관찰하고 심층 분석한 결과가 그렇다. 그러니까 군중이란 원래부터 그런 성질을 지닌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군중의 심리를 일찍이 간파한 이들은 손쉽게 군중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세계의 모든 지배자와 저명한 정치가들, 소규모 인간 집단의 우두머리들, 심지어는 종교계의 성인으로 칭송받는 예수 · 붓다 · 마호메트까지, 그들은 어리석고 우매한 군중의 심리를 본능적으로 확실하게 알고 있는 무의식적 심리학자들이었다.

저자 귀스타브 르 봉이 군중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9세기 말, 프랑스혁명 이후,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한창 격화되던 시기였다. 그는 점점 우세해지는 군중세력을 보며 새로운 사회의 탄생을 직감했다. 그전까지 늘 범죄와 같은 부정적 행위에만 관련지어졌던 군중을 저자는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로 보았고 군중의 지배를 받아야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순리라고 예견했다.

르 봉은 그런 군중의 심리와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군중심리'이다. 군중을 냉정하게 논리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던 저자는 군중이 상당히 감정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무엇보다 군중은 개인과 너무나도 달랐다.

 

그가 보기에 개인은 군중이 되는 순간 이성이 멈춘 무의식 상태에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하는데, 이때 개성은 소멸하고 의지와 분별력도 상실한 채 모든 감정과 생각은 그들을 암시한 자들의 의도대로 향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르 봉이 이러한 무의식적 행동을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무지 탓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판사나 학자, 국회의원이라도 일단 군중이 되면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그러한 무의식은 한 사회를 이루는 복합적 요소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전통 · 인종 · 시간 · 교육 · 환상 · 체험 · 이성 · 이미지 등의 직간접적 요인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일종의 집단적 정신 상태가 만들어져 군중은 한 문명을 해체해버리기도 하고,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는 영웅적 행위도 서슴없이 자처한다.

 

한때 히틀러와 무솔리니 등을 선동했다는 이유에서, 군중을 멸시하고 부정적으로 본다는 일부 평가 때문에 가치절하되기도 했지만 '군중심리'는 여전히 인간 집단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최고의 분석서로 꼽힌다. 가령, 근래 신해혁명 백 주년을 맞았던 중국이나 아랍민중혁명에 관심이 높았던 유럽, 정권이 바뀌었던 일본 등에서는 이 책이 다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군중심리'는 재등장해 대중의 이목을 끄는 것이다.

 

귀스타브 르 봉이 '군중심리'를 집필했던 19세기 말의 군중과 현대의 군중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음에도, 이 책이 이처럼 관심을 끄는 것은 “대중의 심리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짚어냈다”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군중심리와 행동 저변에 깔린 요소들을 예리하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군중은 이 사회의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고 '군중심리'에서 저자가 얘기하는 것처럼 군중의 특징이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군중은 자극적인 문구와 이미지에 휩쓸리고, 때로는 집단 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한 군중의 특성을 이용하려는 자들 또한 넘쳐난다.


귀스타브 르 봉이 분석한 군중심리가 고정불변의 성질을 지닌 것은 아니다. 군중은 개개인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를 이룬,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따라서 군중이 사회의 변화나 발전으로 나아갈 것인지, 억눌린 본능 발산에 그칠 것인지는 군중이라는 생명체의 일부인 나에게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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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과장된 군중은 오직 과장된 감정에만 감동한다.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웅변가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확언을 거침없이 늘어놓아야 한다. 과장하고 확언하고 반복하되 이성적 사고에 의해 논증하려는 시도는 일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대중집회 연설가들이 잘 알고 있는 연설 기법이다. p.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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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은 가장 현명한 철학자들도 좀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그런 덕성을 흔히 소유하기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군중은 그런 덕성을 무의식적으로 실행에 옮기지만, 그거야 뭐 중요하겠는가. 그리고 군중이 이성적 논리보다는 특히 무의식으로 인도된다고 유감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만약 군중이 때때로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했다면 우리 지구 상에서 그 어떤 문명도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고 인류 역사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