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들이 왜 어리석은 행동을 할까? 비합리적인 믿음과 행동은 의외로 보편적이다. 도박꾼이나 광신자만 그런 게 아니라 인재를 선발하는 면접관이나 의사나 엔지니어처럼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가들도 곧잘 통계의 함정에 빠지거나 인과 관계를 착각해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의사들은 환자의 병을 오진하고, 야전사령관들은 멍청한 전투 계획을 고집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지루해 죽겠는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공무원들은 나태와 이기심을 조장하는 비합리적 시스템에 젖어 공금을 아무렇게나 운용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엄청나게 해를 끼치는 잘못된 결정을 되풀이하는 걸까?

 

'비합리성의 심리학'은 비합리적 판단, 선택, 행동이 너무나 널리 퍼져 있음을 갖가지 심리 실험을 통해 섬뜩할 정도로 명쾌하게 보여준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의 상식적 믿음이 하나씩 깨져 나간다. 지금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 인습이 명료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영국의 대표적인 실험 심리학자이자 저술가인 스튜어트 서덜랜드는 방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은 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 비합리성이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무엇인지, 또 비합리적 행동을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시종일관 유쾌하고 익살 섞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데 독특한 매력이 있다.

 

인간은 정말 합리적인 존재인가?

100가지 놀라운 심리 실험으로 밝히는 비합리성의 비밀

 

비합리성의 심리학비합리성의 심리학

이 책은 독자들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푸른 눈 어머니가 푸른 눈 딸을 낳을 확률이 높을까, 푸른 눈 딸이 푸른 눈 어머니를 두었을 확률이 높을까? 면접은 선별 과정으로서 유용할까? 흡연은 폐암 발병률을 10배 증가시키고 치명적인 심장병에 걸릴 확률을 두 배 증가시킨다.

 

그렇다면 흡연자는 심장병으로 죽을 확률보다 폐암으로 죽을 확률이 더 높은가? 당신은 평균 이상의 실력을 지닌 운전자인가? 당신은 심리학 실험의 일환으로 어떤 사람에게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 충격을 주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뇌졸중 같은 병의 발작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을까? 자전거를 타는 것과 회전관람차를 타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했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들이 대체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학은 거의 완전히 합리적인 인간(Homo Economicus)이라는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비합리성이야말로 인간됨의 예외 없는 규준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자기 신념의 증거만을 찾으려 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려고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왜곡하거나 자기를 기만하기도 한다. 생각 없이 권위에 복종하거나, 군중 심리에 휩싸여 어리석은 일을 하기도 하고, 집단에 기대 극단적인 결정을 일삼는다.


이 책에서는 우리 인간들이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저지르는 오류 ― 가용성 오류, 구경꾼 효과, 닻 내리기 효과, 매몰 비용 오류, 죄수의 딜레마, 후광 효과와 악마 효과, 신 포도 콤플렉스 등 ― 와 그 오류들을 작동시키는 원인을 하나하나 만나볼 수 있다.

 

나의 목적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다. …… 누구나 때로는 비합리적이다. 우리는 복잡한 결정일수록 비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십상이다.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가장 큰 이유가 정서 때문에 판단이 흐려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요인이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내재해 있는 결함은 아주 많고 이 책에서는 주로 그런 결함을 고찰하려 한다. …… 내가 가장 중요하게 관심을 기울여 보려는 것은, 체계적이지만 피할 수도 있는 편견을 품고 생각한 탓에 일어날 수 있는, 명약관화하게 비합리적인 판단과 결정들이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그러한 편견을 입증하고 논의하는 것이 될 것이다. 편견은 놀라울 만큼 보편적이면서도 대단히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비합리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서덜랜드는 비합리성의 근본 원인으로 인류의 진화와 뇌신경 세포의 네트워크 오류를 꼽는다. 생존을 위해 집단에 의지하며 살아온 인류의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지금까지 남아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을 못 따라온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은 뇌신경 세포들의 네트워크 오류이다. 뇌의 처리 과정은 몹시 빠르고 순식간에 일반화해버리는데 이 네트워크(신경망)의 엉성함이 문제를 만들어낸다. 뇌는 한꺼번에 몇 개 이상의 것들을 생각할 수 없고, 그래서 가장 인상적이고 두드러진 것에 큰 영향을 받는 후광 효과나 가용성 오류가 나타날 수 있다.


서덜랜드가 제시하는 비합리성의 마지막 근본 원인은 너무도 명백한 인간의 ‘자기 중심적 편견’이다. 비합리성의 핵심인 편견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이다. 서덜랜드는 사람들이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사회적?감정적 편견에 끈질기게 매달리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외면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는 사실을 수많은 심리 실험을 통해 입증한다.

 

왜 비합리성을 반드시 피해야 할까?


합리성은 정말로 필요한가? 혹은 바람직하기는 한가?” 서덜랜드는 합리적인 선택과 행동이 모든 사람의 행복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전문가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데는 반드시 합리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투 계획을 세운 뒤 수많은 사령관들이 명백한 증거를 보고받고도 뜻을 번복하지 않아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불필요하게 앗아 갔다. 어떤 의사들이 확률 이론을 몰랐던 탓에 수많은 여성들은 불필요하고 괴롭기만 한 생체 검사를 받아야 했다. 공무원들은 비합리적인 시스템이 태만을 방기하고 전통과 자기 과시에 매달리게 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공금을 아무렇게나 운용하고 있다. 엔지니어들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위험도를 충분히 치열하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수많은 사상자를 낳기 일쑤다.


저자는 의사, 장교, 엔지니어, 판사, 고위 공무원, 사업가 등 전문가들이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보여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판단이나 조치는 반드시 합리적인 사고를 근거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