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당신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책들을 얼마만큼 읽어보았는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사람들이 읽어보지 않고도 대화 속에 거침없이 그리고 수없이 책들을 늘어놓을 수 있다는 대담한 주장과 함께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저자 또한 강의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책을 접해보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된다.


대화 속에 어떤 책의 이름이나 그 내용이 등장할 때 그것을 잘 모르거나 실제로 접해본 적이 없으면 상당히 당혹하거나 심지어 수치심을 느낀다. 책이름을 꺼낸 사람이 그런 점을 노리는 경우조차 있다. “그 책을 정말 읽어 봤습니까?”란 질문은 무례하며 사회적 금기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다는 사회적 금기는 독서의 신성시, 정독의 의무, 책들에 대한 담론의 부담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열정적이고 창조적인 대화가 가능하며 바로 여기에 진정한 독서의 목적과 진실이 숨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하는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까지 독서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독서란 각 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책과 책, 책과 독자 사이의 네트워크를 파악해 전체적인 지식지도를 그려내는 ‘총체적 독서’를 지향함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이 책에서 무질, 폴 발레리, 발자크, 오스카 와일드에서 소세키, 그레이엄 그린, 움베르토 에코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여러 대가들을 인용하고 분석하며 총체적 독서를 위한 각종 비독서의 방식과 미덕을 논한다.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저자는 소위 지식인 또는 교양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책을 읽지 않고도 그 내용을 능히 파악하는지 아닌지로 구분된다는 주장에까지 나아간다.


저자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말하는 기술이나 비독서 또는 무독서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당연시해온 독서문화와 이에 대한 금기를 되짚어가며 독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써 책의 중요성과 독서의 사회적 개인적 필요성을 주장하는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읽으면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러다 묘한 자신감을 주는 한편으로 독자 자신의 책읽는 방법에 대한 반성을 갖게 한다. 제목이 살짝 거시기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읽어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