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은 전 세계에 피케티 열풍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프랑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 교수의 이 책은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에 대해 참신하고 실증적인 분석과 대담한 대안 제시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섰다. 

 

부의 분배는 오늘날까지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을 통해 18세기 이후 부와 소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로인해 21세기에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피케티는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항상 우위에 있는 것을 지적한다. 즉,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소수 부유계층에 자본이 집중돼 분배구조의 불평등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먼저 국민소득, 자본, 소득 등의 기본 개념을 소개하고 소득과 분배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핀다.

 

자본/소득 비율의 변화의 전망과 3세기에 걸친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를 토대로 불평등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며 극소수의 최고 소득에는 현 수준보다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과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2014년 8월에 프랑스, 2015년 4월에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후 경제계는 물론 세계 지성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온 '21세기 자본'은 국내에서도 이미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의 동학에 대한 참신하고 실증적인 분석과 대담하고 파격적인 대안 제시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있다.

 

한국어판은 영어판인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하버드대출판부)를 저본으로 삼되 원저작인 프랑스어판 Le Capital au XXIe si?cle(세이유)과 일일이 대조해 완역했다. 물론 영어판도 프랑스어판의 완역이다. 영어판과 프랑스어판 사이에 문장상 중요한 차이가 있거나, 영어판에서 누락된 내용이 있는 경우 프랑스어판을 따랐다.


'21세기 자본'으로 일약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떠오른 토마 피케티는, 한편에서는 불과 43세의 그를 마르크스와 같은 사상가의 반열에 올려놓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꾸준히 그의 주장에 반박하며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존 주류 경제학계의 관심 밖에 있던 소득불평등 문제를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실증적으로 연구한 피케티의 연구 주제와 방법론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피케티는 역사적이고 통계적인 접근을 통한 경제적 불평등 연구에 천착해온 소장 경제학자로, 주로 경제성장이 소득과 부의 분배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관한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작업을 다년간 수행해왔다. 특히 국민소득에서 최상위 소득의 비중이 장기간에 걸쳐 변화한 양상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일련의 연구를 통해 그는 성장과 불평등 사이의 관계를 낙관적으로 조망한 쿠즈네츠의 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표하고, 소득과 부의 분배의 역사적인 변화 추이에 있어 정치제도와 재정제도의 역할을 강조한다.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을 연상시키는 책의 제목과 급진적으로 보이는 해결책 제시를 근거로 피케티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몰아세우지만, 정작 그 자신은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비판에는 관심이 없다고 이 책에서 밝힌다. 피케티는 단지 민주주의의 가치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제도 마련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그런 그의 기획을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현실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피케티가 수학 공식에 매몰된 주류 경제학에 반기를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그는 ‘경제과학economic science’이라는 표현보다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고백하면서, 경제학이 과거의 전통인 정치경제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수학적 모형을 통한 순수한 이론적 고찰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제들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과 해법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경제학이 사회적 쓸모를 다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제학은 어려운 학문으로 손꼽힌다. 경제학 책은 대개 전문적이고 복잡한 수학 공식으로 추상적인 이론을 설명하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펴볼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그러나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다르다. 간단한 수학 공식 3개만 이해하면 이 책이 제시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이론을 무난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다양한 문학작품과 영화, 드라마 등이 자주 등장해 저자의 주장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오노레 드 발자크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자주 인용되는데, 이를테면 21세기의 부의 불평등 추세를 고전적 세습사회인 19세기 상황과 비교해 보여주는 대목에서 발자크 소설 '고리오 영감'의 한 장면을 불러온다. 법학을 공부해 출세하려는 가난한 시골 귀족 청년인 라스티냐크에게 냉소적 현실주의자 보트랭은 재능과 노력을 통해 좋은 직업을 얻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일갈한다. 거액의 유산 상속녀와 결혼해 최상위 1퍼센트의 자본소득자rentier가 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노동으로 얻는 소득보다 상속받은 재산에서 얻는 소득이 몇 곱절은 안락한 삶을 가져다주었던 발자크의 세계가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의 시대를 스케치하기 위해 소환된다. 문학작품이 적재적소에서 저자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흥미롭고 적절한 증거로 기능한다면, 그 좌표를 설정하는 것은 상당한 분량의 역사적 통계자료다. 이 책은 피케티의 말처럼 경제학 못지않게 역사에 관한 책이다(47쪽). 그는 300년의 통계자료를 분석해 불평등의 변천을 시대별, 지역별로 보여줌과 동시에 시대와 지역을 통합해 나타낸다. 책의 뒷부분에 목록으로 정리한 도표와 표를 훑어보면 소득분배의 경향과 부의 불평등 추이를 일별할 수 있다.


현실 세계는 외면한 채 과학적 분석에 몰두하는 주류 경제학계의 풍토를 피케티는 ‘유치한 열정’(46쪽)이라고 비판한다.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논리에 빠진 경제학자들이 무시해왔던 기본적인 통계자료를 성실히 수집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연구 방법을 택한 그는 부와 소득의 역사적인 동학dynamics을 이해하기 위해 무려 15년 동안 이매뉴얼 사에즈, 앤서니 앳킨슨 등의 경제학자들과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를 모아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이 책은 3세기에 걸친 20개국 이상의 데이터를 토대로 경제적 불평등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본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치밀한 실증 연구라는 점에서 기존의 주류 경제학 저서가 지향하는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고찰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피케티가 활용하는 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소득의 분배와 그 불평등을 다루는 자료가 첫 번째요, 부의 분배 및 부와 소득의 관계를 다루는 자료가 두 번째다. 이 자료를 통해 부의 분배의 역사적 동학과 사회의 계층 구조를 드러내 보인다. 자본수익률이 끊임없이 감소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19세기 마르크스의 예언과,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경제적 불평등이 자본주의가 발전된 단계에서는 완화되고 안정될 것이라는 20세기 쿠즈네츠의 이론까지 논파한 뒤, 새로운 자본주의의 동학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실용적이고 역사적인 접근 방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피케티의 대안은 대담하고 파격적이다. 최고소득에 매우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과 글로벌 자본세가 그것이다. 현재 30퍼센트대로 떨어진 세율을 노동 의욕에 불리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까지 높일 수 있을까? 피케티는 미국의 경우,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의 소득(약 5~10억 원)을 올리는 상위 0.5~1퍼센트의 소득계층에 80퍼센트의 세율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보다 더 급진적인 대안은 전 세계에 있는 부에 대해 매년 누진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물론 피케티가 설계한 자본세의 세율은 최고소득세율과 마찬가지로, 자본축적의 동력을 유지시켜 성장률을 낮추지 않는 수준에서 책정된다.

 

피케티는 앞으로 세계 경제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 가운데 글로벌 자본세가 가장 덜 위험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적인 저성장 국면에서 목도되는 각국의 보호주의와 자본통제의 움직임은 국제적 긴장을 심화시킬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는 점진적으로, 지역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자본세라는 ‘이상’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먼저 유럽의 부유세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피케티의 해결책은 조세 개혁이다. 기업의 역동성과 국제적인 개방경제를 보호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산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 세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에 대한 누진적 과세는 부의 분배를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책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조세적 접근은 또한 부의 도덕적 위계에 대한 헛된 논쟁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모든 재산은 부분적으로는 정당하지만 잠재적으로는 과도하다. 그 부가 완전히 도둑질의 결과인 경우는 드물며 절대적으로 능력에 의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드물다. 자본에 대한 누진세의 이점은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고 일관되며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방법인 동시에 대규모 재산을 민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이런 경우가 이미 꽤 많이 있다.

'21세기 자본'은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로 시작한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피케티는 자본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회질서를 이루기 위한 적절한 제도와 정책들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일 뿐이다(45쪽).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으로 부가 집중되는 메커니즘은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태생에 따라 삶과 사회가 좌우되도록 할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잠식할 것이다. 피케티 스스로 인정하듯 그의 대안은 다소 이상적이다.

 

그러나 날로 심각해져가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기회비용을 염두에 둔다면 피케티의 제안에 관한 소모적인 이념 논쟁에서 생산적이고 실용적인 담론으로 옮아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을 마무리하는 피케티의 제언은 곱씹어볼 이유가 충분하다.

 

모든 사회과학자, 모든 저널리스트와 논평가, 노동조합의 모든 활동가와 온갖 부류의 정치가, 특히 모든 시민은 돈과 그에 대한 측정, 그를 둘러싼 사실들 그리고 그 역사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숫자를 다루기를 거부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