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를 막론하고 리더십을 행사하는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력·학벌에서부터 생활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므로,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좌파는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다.

 

강남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강남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준만의 <강남좌파>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다"며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를 분석 비판하고 있는 책이다.

 

‘강남 좌파’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노무현 정권 중후반인 2006년 즈음이다. ‘정치적·이념적으론 좌파지만 소득수준과 라이프스타일은 강남 주민스럽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일부 보수진영이 ‘386’으로 대변되는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고자 사용했다.

 

세간에 떠돌던 이 용어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 논의를 점화시킨 인물이 바로 강준만 전북대 교수였다.

 

강 교수는 『월간 인물과 사상』2006년 5월호에 「강남 좌파 : ‘엘리트 순환’의 수호신인가?」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이는 강남 좌파 논란을 공론화한 첫 시도였다.

 

강 교수는 이 글에서 “계급적으로 상류층에 속하면서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게 위선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지적하며, 강남 좌파의 일장일단을 정리한다.

 

강 교수가 주장한 강남 좌파의 명암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긍정론이다. 첫째, 상류층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건 하층계급에 큰 힘이 된다. 상류층 사람이 점하고 있는 위치의 파워 덕분이다. 둘째, 갈등의 양극화를 막는 데에 도움이 된다. 모든 상층계급은 보수, 모든 하층계급은 진보라면 갈등이 살벌해지겠지만, 상층에도 진보가 있고 하층에도 보수가 있다는 건 양쪽의 충돌 예방에 도움이 된다. 셋째, 상류층에 속하면서도 하층계급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다. 그걸 위선으로 보겠다면, 이 세상에 위선이 아닌 건 없을 것이다.


다음은 부정론이다. 첫째, 권력·금력까지 누리면서 양심과 정의의 수호자로 평가받는 이른바 ‘상징자본’까지 갖겠다는 건 지나치다. 빈털터리라도 세상을 향해 큰소리치면서 사는 맛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그런 ‘도덕적 우월감’까지 상류층이 누린다는 건 부당하다. 둘째, 진보를 더 많은 권력·금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강남 좌파의 진보 프로그램은 하층계급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진정성이 결여돼 있으며, 상징적인 제스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강남 좌파의 진보 프로그램은 말로만 강경한 속성이 있어 실천보다는 당위의 역설로 그칠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해낼 수 있는 실천마저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강 교수는 강남 좌파의 유형을 1. ‘강남’의 성격, 2. 주체의 위상, 3. ‘좌파’의 실천 등 3가지 관점에서 각 3가지 유형으로 총 9가지로 분류한다.

 

1. ‘강남’의 성격이라는 관점
1) 경제적 강남 좌파 : 부자가 좌파 성향을 갖는 가장 일반적인 유형.
2) 문화적 강남 좌파 : 부자는 아니나 라이프스타일 등에서 강남 성향을 드러내는 유형.
3) 연고적 강남 좌파 : 부자도 아니고 라이프스타일도 강남 성향이 아닐지라도 최상급의
학벌을 갖고 있어 그 학벌이 제공하는 학연 인맥의 혜택을 누리면서 엘리트 위치를 누리는 유형.

 

2. 주체의 위상이라는 관점
1) 공적 강남 좌파 : 지도자 · 정치인 · 고위 공직자 등의 강남 좌파.
2) 중간적 강남 좌파 : 언론인 · 시민운동가 · 대학교수 등의 강남 좌파.
3) 사적 강남 좌파 : 일반 시민 등.

 

3. ‘좌파’의 실천이라는 관점
1) 이타적 강남 좌파 : 자신의 좌파적 이념과 일상적 삶의 수준과 방식을 일치시키려고
애쓰는 사람들로 사심 없이 좌파적 실천을 위해 헌신하는 유형.
2) 합리적 강남 좌파 : 자신의 ‘강남성’과 이념을 분리시켜, 전자에 대해선 정당한 수준의 이기심을 발휘하지만 후자에 대해선 자신의 소신에 따라 좌파를 지향하는 사람들로 자신의 좌파적 의식이나 행동으로부터 소박한 수준의 ‘자기만족’이나 ‘인정욕구 충족’을 넘어선 사적 이익은 취하 지 않는 유형.
3) 기회주의적 강남 좌파 : 사실상 좌파 성향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좌파 성향을 드러내고 이용하는 유형.

 

강 교수는 이 가운데 ‘공적 강남 좌파’(지도자 · 정치인 · 고위 공직자)가 ‘기회주의적 강남 좌파’ 노릇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강남 좌파에 대한 비판의 대부분도 이러한 강남 좌파를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다’고 주장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리더십을 행사하는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력·학벌에서부터 생활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므로,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좌파는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조건 강남 좌파 자체를 비판하는 건 좌파를 싸잡아 비판하겠다는 우파의 정치적 책략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아니, 우파라도 서민을 상대로 포퓰리즘(populism: 민중주의) 자세를 취하는 게 ‘정치의 문법’인바, 우파 정치인에게도 강남 좌파 요소가 농후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우파는 강남 좌파를 ‘위선의 화신’인 양 비난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만, 그들 역시 말로는 늘 국가와 민족이 잘되게 하겠다는 이타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사실상 강남 좌파 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다”는 논리가 가능한 것이다.

 

강 교수는 강남 좌파의 문제는 ‘이념’보다는 ‘엘리트’ 문제로 접근해야 된다고 역설한다. 그는 뉴욕대 정치학 교수 버나드 마넹의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은 ‘새로운 엘리트의 부상과 다른 엘리트의 퇴조’일 뿐”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이는 마넹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민주주의 전문가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강남 좌파에서 ‘좌파’는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기존 엘리트 지배 체제를 당연시하면서 자꾸 ‘보수 대 진보’의 이념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면 이 문제는 풀리지 않으며, ‘엘리트 대 비(非)엘리트’의 구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엘리트들의 ‘승자 독식주의’가 지속되는 한 대중은 늘 그들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제1장과 제2장에서 강남 좌파에 대한 논의와 실체를 분석한 강 교수는 제3장부터 본격적인 인물비평(실명 비판)을 가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3장 위선에 대한 분노인가?: 노무현 시대의 강남 좌파 논쟁


‘배부른 진보’·‘강남 좌파’ 등의 용어가 노무현 정권 시절에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다루었다. 이때의 강남 좌파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노 정권의 위선 또는 이미지·실체 사이의 괴리를 겨냥한 비판이었다.

 

제4장 오마이뉴스의 강남 좌파 띄우기: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일부 진보세력이 진보정권 재창출의 전망이 부재한 가운데 정치공학적 용도로 신(新) 강남 좌파를 등장시킨 사건을 다루었다. 강남 좌파 요소가 조금 있었을망정 노 정권 상층부의 주요 구성원들은 이미지상으론 강남 좌파와는 거리가 멀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거나, “냉동실에 들어갔던 고기가 해동되면 더 빨리 썩는다”는 비아냥의 연장선상에서, 강남 좌파라는 딱지가 달라붙은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미지가 정반대인 정통 강남 좌파야말로 그런 비아냥을 원천봉쇄하는 동시에 유능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노 정권에 대한 실망·좌절·환멸을 역전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게 바로 오마이뉴스가 ‘강남 좌파 띄우기’를 한 배경이었다. 이는 ‘정치엘리트의 급조’라 부를 만한 것이었지만, 그 바탕엔 유권자들의 뿌리 깊은 기성정치 혐오와 새것을 좋아하는 ‘새것 신드롬’이 있었다.


제5장 왜 또다시 강남 좌파인가?: 조국-오연호의 진보 집권 플랜


오마이뉴스가 대선 시즌을 맞아 이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강남 좌파 띄우기’를 시도하는 사건을 다루었다.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이유와 배경으로 시도된 일이지만, 지난 5년간 이루어진 한국 사회의 변화상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적한 일반인 강남 좌파의 커밍아웃으로 상징되는 강남 좌파층의 확대, 이명박 정권의 ‘촌스러움’에 대한 유권자들의 절망, 여전히 상존하거니와 더욱 강해진 기성정치에 대한 혐오 등이 그 변화상의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제6장 왜 박근혜는 침묵하는가?: 박근혜 인기의 비밀


박근혜 인기의 비밀 중 하나가 부정적 의미의 강남 좌파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다. 위선의 반대는 침묵인가? 그녀의 침묵마저 정치적 자산이 되는 이상 현상이 제기하는 질문이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지지의 이유로 그녀의 신뢰·헌신·애국심 등을 꼽는 것은 복고적 엘리트주의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이면엔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가 노정하는 한계에 대한 염증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7장 분당은 미리 보는 2012년 대선인가?: 손학규의 재기


좌파에서 우파를 거쳐 다시 분당 좌파로 재기에 성공한 손학규를 다루면서 분당 좌파·강남 좌파는 분당 우파·강남 우파 정권에 대한 반감과 반작용으로 부각된 면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다. ‘반감과 반작용’은 한국의 모든 선거를 지배하는 철칙으로 정치 엘리트들에게 성찰을 필요 없게 만드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좌우 진영을 옮겨 다니다가 유력 대선 후보가 된 ‘손학규 현상’은 전례가 없는 일이기에, 그의 정치적 행보와 운명은 강남 좌파에 대한 논의를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제8장 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가자: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강남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강남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제9장 이명박 정권이 나라를 망친다: 문재인의 분노


노무현과 노 정권에 덧쓰인 부정적 강남 좌파 이미지를 벗기고 명예 회복을 위해 분투하는 유시민과 문재인의 ‘인물 중심주의’ 정치관을 다루었다. 이들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평가는 민주화 이전의 엘리트주의와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충돌로 인해 매우 복잡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제10장 강남 우파의 강남 좌파적 언어: 오세훈의 ‘따뜻한 보수’


강남 우파이면서도 강남 좌파적 언어를 전복적으로 구사하면서 반(反)포퓰리즘 노선을 전투적으로 밀어 붙이는 오세훈의 전투적 ‘프레임 전략’을 다루었다. 소통을 희생으로 한 그의 ‘프레임 전략’은 정치엘리트의 ‘브랜드화 전략’에 대한 우리 모두의 주목을 요하는 사건이라 하겠다.

 

 

덧>

우리 시대의 필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