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7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7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는 1994년 기획과 집필이 시작된 후 10년 만에 완간된 책이다.

 

해방 이후 우리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면서, 우리 역사 전체를 일목요연하고 체계 있게 서술하여 이렇다 할 한국통사가 없었던 당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정치사 위주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각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고 생활사와 문화사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그 과정에서 민중의 목소리를 들려주려 한 것 또한 다른 역사서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화전민 김돌쇠, 농사꾼 칠성이, 뼈빠지게 일하고도 배필을 찾지 못하는 마흔 살 총각머슴 같은 '별 볼일 없는' 민중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야기체 역사서술도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가 선두주자였다고 할 수 있다. 철저한 현장조사와 문헌고증을 바탕으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쓴 덕택에 역사 대중화에 기여했다.

 

이 모든 것이 한 개인의 집필로 완성되었다는 것 역시 평가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역사를 보는 개인의 힘으로 씌어졌기에 새로운 관점과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고, 피지배계층에게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한 한계 역시 분명하다. 

 

'조선의 문을 두드리는 세계 열강'은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7권이다.

 

17권은 1863년 12월, 철종이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면서 시작된다. 파락호 이하응이 역사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44세의 이하응은 임금의 아버지 자격으로 흥선대원군에 추대된다. 흥선대원군은 서원을 철폐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경복궁 중건에 나선다.

 

이 시기는 세계 열강이 조선의 문을 두드리는 때였다.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으로 문을 닫아건다.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터지고 병인양요 신미양요 사건이 잇따른다. 내부적으로는 반봉건 투쟁이 펼쳐진다.

 

그 와중에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권력 쟁탈전이 이어지고, 이 혼란을 틈탄 매관매직으로 민심은 이반된다. 결국 운양호 사건으로 강화도 조약이 맺어지고, 쇄국정책의 빗장이 열리면서 새로운 문물이 쏟아져들어온다.  

 

 

조선의 문을 두드리는 세계 열강,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7조선의 문을 두드리는 세계 열강,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7

 

 

내가 읽은 책은 2004년에 나온 1판 2쇄본이다. 이 책은 현재 개정판이 나와 있다. 다음은 개정판을 내면서 밝힌 주요 개정 내용이다.


 

2015년, 촘촘한 내용 보완과 새로운 디자인으로 무장하다

 

지난 20여 년간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는 총 300쇄를 거듭하며 50만 명의 독자들과 함께했다. 개정판에 대한 의지는 여러 번 있었지만 방대한 분량을 다시 손본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퇴색되지 않고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그 가치를 다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개정판을 출간하게 되었다.

 

1. 오류수정 및 내용 보완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는 오랜 시간 독자와 호흡해온 책이다. 쇄를 거듭할 때마다 독자와 소통하면서 쌓아온 수정 사항들을 반영해왔으나 미처 잡아내지 못한 내용들이 있었다. 저자는 전 22권의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며 그동안 아쉽게 생각해왔던 오류를 바로잡고 현재의 역사적 쟁점을 다루는 내용을 보완했다.

 

주로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내ㆍ외부적 역사왜곡의 상황과 각각의 처지에 따른 다양한 해석을 서술하고,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 저자의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치열했던 근현대사의 내용을 대폭 수정한 것은 개정판을 내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고대사 부분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른 동아시아 역사왜곡 문제를 다루었다. 단군조선과 요하문명론을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연구하는 중국의 시각, 이를 평양 중심으로 왜곡하여 대동강중심설을 내세우고 있는 북한, 중국과 반대의 의견을 내세우는 우리나라 재야사학자들의 확대해석에 비판을 가하고 조심스러운 견해를 표명하면서, 요하문명권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기자조선의 존재여부에 대한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롯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발해사를 둘러싼 중국, 일본, 러시아, 우리나라의 해석 문제도 제시한다. 전체적으로 동북공정의 배경과 진행과정을 설명하며 지금까지 진행된 우리의 대응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하며 앞으로의 대처방식을 제시했다.

 

조선 후기에서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정조 시기의 탕평정책과 문체반정 내용을 보완하고, 동학농민전쟁을 빌미로 시작된 청일전쟁으로 조선이 청나라의 세력에서 벗어났지만 일본이라는 또 다른 제국주의 세력 아래로 편입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한 보충 설명을 더했다. 근대 시기 갑오개혁과 폐정개혁안을 비교하고 동학농민전쟁(혁명)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도 돌아보았다.


또한 3ㆍ1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른 용어해석 문제, 일본 제국주의 국가범죄와 인권유린의 참상인 가미가제, 일본군 위안부와 여성근로정신대 동원의 실상과 명칭 문제, 징용ㆍ징병 문제 등 역사 바로잡기에 빠질 수 없는 일제 식민지 시기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그밖에 금속활자ㆍ판소리 등의 문화사, 놀이와 풍속ㆍ노비해방에 대한 사회사, 유교사상의 희생양 ‘열녀’에 대한 여성사, 3ㆍ1운동에 참여한 기생과 어부, 공장노동자 등 기존 역사책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다루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여전히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민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2. 사진 및 디자인 교체: 기존 사진 중 화소가 떨어지는 사진들은 좀더 선명하게 보일 수 있는 사진들로 교체했다. 또한 문맥을 정확히 파악하여 본문과 어울리지 않는 사진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진으로 바꾸었다. 낡은 표지와 본문 디자인 역시 각 권의 시대에 해당하는 대표 이미지들을 이용해서 새롭게 디자인했다.

 

3. 기타: 교정에 있어서도 최신 규정을 참고하여 적용하였으며, 사진 캡션과 용어 보충 설명, 지도에 대해서도 철저한 고증 및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였다. 보충 설명의 위치도 실제 본문에 포함된 용어를 읽은 후 바로 참고할 수 있도록 상하 위치를 조절하여 가독성을 높였다.

 

 

조선의 문을 두드리는 세계 열강,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7조선의 문을 두드리는 세계 열강,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7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가 걸어온 길

 

1994년 11월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에게서 10년 계획의 한국통사 집필을 의뢰받음.

 

이를 수락하여 전체계획을 수립하고 기술범위와 내용, 서술방식과 문장, 사료 이용의 기준 등을 구상. 여러 통사를 비교 검토. 시대별 특징을 감안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분야를 나누지 않고 여러 분야를 한 시대에 아우르는 교직(交織) 방식을 택하기로 함.

 

1995년 2월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인 윤해동, 한상구, 임대식, 우윤, 이신철 등 소장학자들과 기술시기와 분량 등을 협의해 24권으로 정하고, 내용을 고대에서 1945년까지로 한정하되 민족사ㆍ민중사ㆍ생활사 중심으로 기술하기로 결정. 원고지 집필방식을 벗어나 컴퓨터를 배워 집필하기로 마음먹고 대학생 아들(응일)에게 워드를 배움.

 

1995년 7월 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 연화분교(폐교)의 관사를 집필장소로 결정. 폐교 관리인인 이장 우기언 씨 집에서 기식하기로 함. 방안에는 냉장고와 선풍기를 두지 않고 시원한 샘물로 더위를 삭힘. 1차분 고대사 관련자료를 옮겨놓고 집필 시작. 야간에 집필하는 습성에 따라 밤에 전기가 자주 나가 애로를 겪은 끝에, 1997년 2년에 걸쳐 고대사 4권 분량 집필을 완료.

 

집필 기간에 축하한다고 역사문제연구소 식구들 100여 명이 들이닥치거나 참여연대에서 여름연수를 한다고 150여 명이 몰려와 동네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외지인이 모여들었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림. 또 한길사에서 김언호 사장 이하 관계자들이 역사기행이나 세미나를 벌이느라 자주 드나듦.

 

1998년 6월 1차분 네 권 간행. 한민족의 기원과 단군에서부터 후기 신라와 발해사까지 포함. (1)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2)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를 찾아서 (3)삼국의 세력다툼과 중국과의 전쟁 (4)남국 신라와 북국 발해
내용검토와 조언은 전덕재(서울대 강사)가 맡아줌.

 

모든 신문과 주간지 등의 언론에 한국 근대사학 최초로 가장 방대한 통사를 집필한다는 대대적 보도로 심한 부담감을 가짐. 이해 여름 고대사 부분 간행기념으로 독자 25명과 함께 배로 압록강 입구 단동을 거쳐 요양과 봉황성, 요동반도 일대의 고구려 유적 답사.

 

1997년 가을 연화분교에 친지들이 자주 찾아와 집필에 방해를 받아 집필 장소를 김제 월명암(금산사 입구)으로 옮겨 1년 동안 고려사 부분 집필을 완료.

 

1999년 1월 2차분 간행. (5)최초의 민족통일국가 고려 (6)무신의 칼 청자의 예술혼 (7)몽골의 침략과 30년 항쟁 (8)개혁의 실패와 역성혁명
내용검토와 조언은 최연식(서울대 강사)이 맡아줌.

 

고려사 집필을 완료한 뒤 조선시대 집필에 필요한 방대한 자료를 시골로 옮길 수 없어 다시 집필장소를 구리시 아차산 아래 자택 지하실로 옮김. 집필실에는 전화와 휴대폰을 두지 않고 외부와의 연락을 단절한 채 꼭 필요한 연락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간접방식으로 전달받음. 이해 여름 2차분 간행기념으로 독자 50여 명과 북한산의 승가사, 진흥왕순수비 등 답사.

 

2000년 2월 3차분 간행. 조선 전기의 역사로 (9)조선의 건국 (10)왕의 길 신하의 길 (11)조선과 일본의 7년전쟁 (12)국가 재건과 청의 침입
내용검토와 조언은 염정섭(서울대 박사과정)이 맡아줌.

 

틈틈이 조선 후기 연구자들과 조일전쟁 전적지, 남한산성과 강화도, 그리고 실학의 요람인 경기도 일대 등 답사.

 

2001년 3월 4차분 간행. 조선 후기의 역사로 (13)여러 세력의 갈등 (14)놀이와 풍속의 사회사 (15)문화군주 정조의 나라 만들기 (15)문화군주 정조의 나라 만들기
큰 사건이 없는 시기여서 계획보다 한 권 분량을 줄임.
내용검토와 조언은 염정섭(서울대 박사과정)이 맡아줌.

 

틈틈이 우윤 등 연구자들과 농민전쟁 관련 유적과 강화도 등지 답사.
많은 사료와 연구업적에 치여 가장 힘든 집필시기를 보냄. 4차분 집필을 완료하였을 때 묵은 386컴퓨터 가동이 중지되어 며칠 동안 앓음. 거의 한 권 분량을 인쇄해두지 않았던 것인데, 아내와 아들이 용산 전자상가에 싣고 가 복원하여 다행히 위기를 면함. 이후 부랴부랴 새 컴퓨터를 사들임.

 

2003년 봄 식민지 시기 전공자인 김백일(역사비평 대표), 윤해동(서울대 강사), 한상구(서울대 박사과정) 등과 백령도에서 2박3일 토론회를 열고 마지막 책에 식민지 생활사를 담는 것에 합의. 정동 등 서울 주변지역을 은정태 등 연구자들과 답사.

 

2003년 12월 5차분 간행. 19세기부터 대한제국 멸망시기의 역사로 (16)문벌정치가 나라를 흔들다 (17)조선의 문을 두드리는 세계 열강 (18)민중의 함성 동학농민전쟁 (19)오백년 왕국의 종말
내용검토와 조언은 우윤(전주역사박물관장)과 윤해동(서울대 강사)이 맡아줌.

 

2004년 5월 6차분 간행. 식민지 시기 35년사로 (20)우리 힘으로 나라를 찾겠다 (21)해방 그날이 오면 (22)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 바람
내용검토와 자료 수집은 윤해동, 장신(역사문제연구소 사무국장), 장용경(서울대 박사과정)이 맡아줌.

 

집필대상 시기가 짧아 계획보다 한 권 분량을 줄여 집필 완료. 특히 마지막 책으로 근대 생활사를 담은 22권의 집필에 당시 간행된 신문이나 잡지의 열람, 자료수집에 큰 애로를 겪음. 하지만 장용경 씨에게 복사하게 하여 입수하고 시간을 절약하려 도서관 출입을 삼감. 또 생활사 부분은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검토해주심. 박 선생은 일제강점기 도시에 살면서 학교에 다녔고 기억력이 뛰어나 많은 도움을 주심.

 

집필 끝 무렵에는 컴퓨터 병인 팔과 손가락, 허리의 통증으로 고생을 심하게 하였다. 병원에 다니면서 물리치료와 약물복용을 해도 낫지 않더니 집필이 완료된 뒤 두어 달 원고를 쓰지 않으니 씻은 듯이 나았다.